OUR NOTE / 작은 의무감

Edit By Jihyun작은 의무감
밤은 어두웠고, 나무들이 살며시 소곤거리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고요한 냉기가 내려오고 있었고 텃밭에서는 회향풀 향기가 났다. 나는 오솔길을 모두 걸어 돌아다녔다. 내 가벼운 발소리가 나를 놀라게 하는 한편, 힘을 북돋워 주기도 했다.

이반 투르게네프 <첫사랑>


작업실 생활을 한 것도 올해로 벌써 5년째다. 해가 드는 작업실로 이사를 하며 식물을 키우기 좋아하는 친구를 통해 화분 가꾸는 취미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사실 부모님이 화분 가꾸기를 아주 오래전부터 해오셨는데, 나는 계속 무관심했다. 고추, 토마토 또 상추들이 자라는 흙이 썩 깨끗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그 나무들을 5분이상 쳐다본적이 없다.) 서교 프라자에 이사를 오며 선물로 받은 화분들을 하나 둘 키우며 의무감에 시달렸었다. 물을 줘야하는 의무감, 해를 쬐어 줘야하는 의무감. 그 의무감과 시달림이 결국 내 습관이 되었고, 그 일에 익숙해져갔다. 동교동 작업실에 오며 본격적으로 화분을 많이 가꾸기 시작했는데, 두께가 두꺼워지고, 길이가 길어지는 잎들을 보며 자연의 위대함과 생명의 신비감으로 감탄하는 것이 즐거웠다. 먹는 것 외에 감탄하는 것이 별로 없었던 나였기 때문에 그 신선했던 감탄은 일상의 쏠쏠한 재미였다. 이름이 있는 화분들도 있고, 이름을 모르는 화분들도 있다. 여기서 죽은 화분은 한 7-8개 정도 된다. 주로 종로 5가와 양재동에서 사온 화분들,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로 부터 선물 받은 화분들이다. 내가 쳐다 보고 있을땐 미동도 없지만, 밤새 야무지게 자라 밝은 새 잎을 내놓은 모습을 보면, 조금 과장을 보태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