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귀여움을 그릴 수 있다

소소문구는 2014년부터 1년에 한 명의 작가를 모셔, ‘소-작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협업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4년 부터 2020년까지 4명의 작가분들과 함께 했는데요. 소-작 프로젝트 이후, 작가분들이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최근 활동에 소-작 프로젝트가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이야기 했습니다.

소작 돌아보기 : 이은주

 


'평소 그리던 방식과는 조금 다르게 그렸어요.'
-2020.07.03. 천호동 자택, 소작 프로젝트 리마인드 이은주 작가의 말


 

 

 


Q. 소작 프로젝트 주제가 '아기 돼지 삼형제'였는데요, 어떻게 정하게 되셨나요?
A. 첫 미팅때 다같이 모인 자리에서, 제가 영국에 있을 때 모았던 우표를 가져갔었는데요. 동화를 주제로한 우표였어요. 그 우표가 셋다 너무 좋아서 “동화”로 풀어보자고 했었어요. 여러 동화들 중에 어떤 동화를 해야할지가 관건이었는데요, 최종 후보가 헨젤과 그레텔, 그리고 아기돼지삼형제였어요. 초반에는 러프하게 스케치했어요. 그 두 가지 동화로 시안이 나왔고, 아기돼지삼형제가 대중들께 더 친근한 소재일 수 있을 것 같다고 의견을 모았어요. 출시해가 황금돼지해 (2019년) 였다는 점도 주제를 정하는 데에 중요했던 포인트입니다.

Q. 소작 작업을 하실 때 가장 신경쓰셨던 부분은 무엇이었을까요?
A. 귀여워야 잘 팔리지 않을까? 소소문구에 보탬이 되려면 귀여운 돼지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부담감이 있었지요. 그래서 평소 그리던 방식과는 조금 다르게 그렸어요. 이전까지는 대칭적인 구도와 그로테스크한 방식으로 풀어갔다면, 소작 프로젝트에선 귀여운 아기 돼지 삼형제의 이야기를 보여주려했어요. 또한, 클래식하게 표현하고 싶었는데요,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 돼지들의 복장, 집에 들어간 문양 등 스코틀랜드 전통 의상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퀼트 치마나 체크 무늬를 의식적으로 입혔죠. ⠀

Q. 소작 프로젝트를 하면서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궁금합니다.
A. 아, 제 인생 첫 감리 현장이요. 추운날 을지로 인쇄 골목이었지요. 소음도 엄청났고, 잉크 냄새가 강렬했어요. 소소문구 온유 디자이너님이 색깔이 어떤지 여기도 보고 저기도 보라고 하셨는데. 👀 전 감리가 처음이다 보니, 뭐가 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눈에 띄게 이상하지 않은 미미한 색상 차이는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시간을 두고 더 뚫어져라 보아야 전문가인걸까? 했지만, 숙련도 높은 인쇄소 기장님과 소소문구 디자이너님을 믿고 맡겼습니다. 최종 결정된 색상 모두 만족했어요.

Q. 소소문구와의 협업으로 생긴 변화가 있었을까요?
A. 나도 귀여움을 그릴 수 있다' 라는 새로운 길을 찾았지요. 소작 프로젝트 이후에, 외주 문의가 굉장히 많았어요. 페이가 좋았던 미국 게임 회사, 홍대 앞에서 오래된 카페 중 한 곳인 밀로 커피 로스터스, 등 상업 작업의 기회가 확장 됐어요.이전에는 그로테스크 하거나, 제 기준에선 귀여웠던 작업들이 주였거든요. 하지만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제 그림이 살짝 도전적일 거에요. 그런데 아기 돼지 삼형제의 귀여움을 보고 연락을 주시는 클라이언트분들이 생겼지요. 유학 후, 귀국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여서 '한국에서 뭐해먹고 살지' 라는 고민이 있었는데요. 소작 프로젝트로 국내 활동의 첫 단추를 잘 채웠습니다.

Q. 요즘 무언가 고민하고 계시는 게 있을까요?
A. 외주 일만 하고 있어요. 좋지만은 않아요. 왜냐면 개인 작업을 못하거든요. 하다가 만 작업도 엄-청 많아요. 외주 작업은 명확한 주제가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작업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결과물이 나올 때가 있어요. 재밌는 방향으로요. 반면 진행이 조금이라도 막히면, 나 이제 좀 늙었나… 상상력이 딸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여러 외주 작업을 하다보니 다양한 컨셉을 접하게 되어 그런 것에 길들여 진달까요? 장단점이 있습니다. 점차 평면 작업에서 벗어나는 아웃풋으로 작업을 넓혀 보려합니다. 특히 패브릭 소재에 관심이 있어요.

 

 


Q. 요즘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A. 요즘 위빙 Weaving 으로 러그를 만드는 거나, 도자기 만드는 것에 관심이 생겼어요. 러그 작업은 예전부터 욕심이 있었는데요. - 방에서 뭔가 가져오심🏃🏻‍♀️- 이건 아주 오래전 작업했던 거예요. 영국에서 졸업전시 때 만든 그림책의 한 장면을 프린트한건데요. 그 장면을 태피스트리(Tapestry: 다채로운 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 벽걸이나 가리개, 실내 장식품으로 씀.)로 만들었어요.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평면 작업에서 조금씩 입체 작업으로 확장해보고 있어요.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될 수 있는 작업들이, 참 재밌습니다. 아, 컵도 모으고 있어요. 컵에 미친 사람처럼 말이지요. 거의 재산을 탕진하고 있습니다. 결혼하고 나니 컵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이건 이집트 벽화 느낌으로 매년 나오는 그릇 시리즈중 하나인데요. 그릇에 그림이 그리는 작업도 참 재미있죠. 부식시키고 그림 그려서 이렇게 그릇에 그림 그리는 작업도 꼭 해보고 싶어요.

Q. 작가님이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A. 20대 때 혼자 살면서, 세상의 쓴맛을 많이 맛보았지요… 그때 본격적으로 제 작업 세계가 시작된 것 같아요. 아, 세상이 아름답지 만은 않구나 라는 걸 깨달아서요. 인생사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 하며, 내면의 생각들이 많이 변화하고, 움직이고, 말랑했던 시기였어요. ‘유토피아’라는 게 사실 없잖아요. 토마스 모어가 그리스어의 '없는(ou-)', '장소 (toppos)' 라는 두 말을 결합해서 만든 단어니까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를 의미하죠. 그래서 의미 없는 말일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찾아요. 마냥 밝지만은 않은 세상인데도요. 그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찾는 것”이 인간의 본능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제 작업을 통해, 어떤 대안적인 공간, 현실과는 다르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을 탐색하고, 그걸 사람들에게 보여주려 합니다. ⠀

Q. 작가님은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으세요?
A. 10년 후에는 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인테리어 분야까지 확장하고 싶어요. 아까 보여 드렸던 도자기 작업이나 태피스트리, 러그 와 같은 아이템들로요. 저는 제가 순수 회화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일러스트레이터는 ‘필요에 의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용도가 있는 물성에 그림이 입혀지는 것이 제겐 이상적인 방향입니다. 생활 공간 안에 녹아드는 오브제 속 그림, 우리의 삶을 유토피아에 가깝게 해주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제 그림이 있는 곳이 누군가에겐 유토피아가 될 수 있게요. "


 




소작 돌아보기 : 소소문구
'족발집에서 외주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홈런 친 기분입니다.'
- 2020.07.31.금 리마인드 소작 인터뷰 지현 디자이너의 답변중


 

 


Q. 네번째 소작 프로젝트,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A. (지현) 이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작가님들, 그리고 그들의 화풍을 소개하는 것이 저희의 임무에요. 그렇다보니 시간이 날 때마다 작가분들을 서치합니다. 당시엔, 새로운 화풍의 일러스트레이터와 함께하고 싶었어요. 그라폴리오, 인스타그램, 전시 등 여러 경로로 조사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이은주 작가가 영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망설임 없이 바로 제안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은주 작가님 그림은 국내에선 보기 드문 스타일이거든요. 이은주 작가는 저와 친구 사이에요. 그렇다보니 작가님이 영국에서 무엇을 공부하고, 요즘 뭘 작업하는지 작가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알고 있었어서, 결정하는데 오래걸리지 않았어요. 이 인터뷰 직전에, 작가님께 족발 가게에서 외주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홈런 친 기분이었어요. 사장님이 아기 돼지 삼형제 제품을 보고 연락을 주셨대요.

Q. 작가님 작품에서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셨을까요?
A. (지현) 이국적인 느낌이요. 캔버스에 가득 찬, 이은주 작가님만의 맥시멀한 표현 방법이 눈을 홀린다고(?) 해야 할까요. 소작 작가를 선정 할 때, 이전의 작가분들과 확연히 다른 풍의 그림을 찾으려고 합니다. 이전의 작가분들과 다른 그림을 보여줘야 각자 빛이 나거든요. 노보듀스 작가님의 그림은 서정적, 인물 중심, 부드럽고, 조용한 느낌이죠. 이은주 작가는 화려함, 웅장함, 거친 느낌이 들고요. 다양한 작가분들이 이 프로젝트의 균형을 잡아줘요. 그 균형감으로 소작 프로젝트의 힘을 기르고 싶습니다.

Q. 작품을 제품으로 만드는 데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일까요?
A. (지현) 작가님이 주신 파일이 캔버스라고 치면, 캔버스에 빈 부분이 없었어요. 그 가득한 색과 터치감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종이를 고르는게 역시나 첫 번째 미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업은 이제 모든 소작 프로젝트의 필수 단계인 것 같습니다. 텍스쳐감이 도드라지는, 입체적이고 성격이 뚜렷한 종이들로 테스트를 많이 했어요. 또한, 아기 돼지 삼형제가 "캐릭터”, “마스코트”의 인상이 아닌, 이야기의 등장인물처럼 보이도록 했어요. 맥주의 라벨로 등장한다거나, 어떤 제품에는 아예 돼지가 없이, 집만 등장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요.

Q. 네번째 소작 프로젝트에서 가장 소개하고 싶은 제품을 소개해주세요.
A. (지현) Piggy beer 피기 비어 맥주 모양 카드요. 요즘 맥주 먹기 좋은 때 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 계속 눈이 가네요. 이 제품 디자인 할때 "나, 성인분들을 위한 카드 만들어 보고 싶어.” 라고 했어요. 한 가지 옵션 정도는, 실험적으로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우려도 했어요. '이거 주류라서 혹시 특정한 법에 걸리는 것 아닐까?’ 걱정하고 인터넷에 찾아보고 그랬지요. 저희가 그런 면에 있어서는 꽤 소심해서요. 종이 한 장짜리 상품이지만 성인들이 소비하는 ‘알콜’을 상품화 하는 것이니까, 혹시 뭔가 충족해야 하는 요건이 있지 않을까? 꼬리의 꼬리를 무는 걱정이요. 다행히(?) 없었습니다.

 

 


(지민) 어른을 위한 카드이니까, 뭐랄까, 성인들의 취향으로 세부 사항들도 챙겼습니다. 봉투를 과감하게 완전히 검은색 종이로 했었지요.

Q. 그 당시 소작 프로젝트로 새롭게 경험한 일화를 소개해주세요.
A.(지현) 아주 큰 포스터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6개월씩 달력이 얹혀진 2장 짜리 2019년 달력이요. 잉크가 마르자마자, 식구들 다같이 직접 포장하고, 서울 디자인 페스티발에 참가했어요. 연말에 이뤄지는 행사라, 많은 분들께서 달력에 관심을 주셨어요. 아직도 생각나는 손님이 계세요. 만삭이신 어머니 손님이셨는데요, 2019년 돼지띠 아기를 만날 준비를 하고 계신다고 하셨어요. 부스에 계시는 동안 내내 기대감과 설렘 가득한 미소를 지으셨지요. 삼형제가 그려진 포스터 달력, 카드, 스케치북, 노트까지 골고루 구입해주셨어요. "돼지의 해에 태어날 아기의 방에 이렇게 귀여운 아기 돼지 삼형제 달력이 걸리다니!" 다같이 행복한 겨울이었습니다.

Q. 이은주 작가님과의 소작을 마치고, 이어진 소작 프로젝트에 미친 영향이 있을까요?
A. (지현) 이은주 작가님께서 이 전 인터뷰에서 말씀하신 것 처럼, 사람들은 자기만의 유토피아를 찾고 싶어해요. 다섯번 째 소작 프로젝트 작가님과 그 유토피아를 함께 찾는 중이에요. “나를 행복하게 하는 취미”를 통해서요.